재환은 자신의 뺨을 콕콕 찌르는 원식의 손을 대강 밀어내며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래봤자 턱이 좁고 입이 작아서 얼마 줄어들지도 않는다. 원식은 재환의 맞은 편에 앉아 실실 웃으며 감자튀김을 케첩에 푹 찍어 입에 가져다 댔다.
“아~”
재환은 고개를 돌려 볼을 부풀려가면서 열심히 햄버거를 씹었다. 오물오물, 도톰한 입술을 앙 다물고 꼭꼭 씹는 꼴이 마치 7살 난 어린애같은데 자신보다 연상이라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원식은 같이 클럽을 다니는 친구들이 보면 미친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눈꼬리를 더 아래로 늘어트리며 바보처럼 웃었다.
“오늘 공부 많이 했어요?” “그럭저럭. 아, 경제학 진짜 하기 싫어…” “어? 과목에 경제학도 있어요?” “응. 행정법, 행정학, 경제학… 경제학이 제일 싫어.” “나 경제학관데.” “….거짓말.” “진짜에요! 학생증 보여줄까?”
원식은 두툼한 지갑을 열어 안쪽 포켓을 뒤지다가 그냥 통째로 한 뭉치를 꺼냈다. 폴라로이드 사진과 명함, 쿠폰 등이 한 데 섞여 어지러웠다. 원식은 포커를 섞듯이 테이블에 종이 뭉치를 펼치며 학생증을 찾았다. 재환은 무심한 눈길로 원식이 꺼내놓은 것들을 빠르게 훑었다. 원식은 학생증을 무슨 대단한 자격증이라도 되는 양 재환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자, 봐요! 경제학과 맞지?” “….너 공부 안 하잖아. 맨날 클럽만 다니구.” “아냐, 공부하다가 기분 전환하러 가끔 가는 거지.” “가끔은 무슨. 너 클럽에서 나보고 못 보던 얼굴이라고 했잖아. 완전 클럽 죽돌이 티 다 냈으면서. 이거 봐, 이것들도 다 클럽에서 찍은 사진이네.”
재환은 원식의 사진을 콕콕 찝었다. 클럽에서 생일파티를 한 것인지 가운데에 있는 원식은 화려한 생일 케익을 들고 있었다. 옆에 친구들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고 원식의 뒤쪽에는 눈을 접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한상혁이 있었다. 이 새끼, 이거 고등학생 때 같은데. 아, 김원식이 3월 생이니까 올해구나.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까지 같다니 생각보다 더 막역한 사이일지도.
“에이, 그건 그냥 작업 멘트지. 내가 어떻게 클럽 오는 사람들을 다 알겠어요?”
원식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재환의 핀잔을 술술 받아 넘기며 재환을 꼬셨다. 재환이 그래서 뭐. 라는 표정을 짓자 원식이 콜라를 빨대로 쭉 빨고 나서 말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경제학 배워요. 내가 다 알려준다.” “….못 미더운데.” “혀엉! 나 진짜 머리 좋아요! 노는 것도 머리 좋아야 노는 거라니까? 모르는 거 다 가져와요, 내가 푸나 못 푸나.” “그럼 내일 시간 돼?” “내일?” “응, 모르는 거 몇 개 적어놨는데 내일은 학원 자습하는 날이라…” “내일은 아는 동생 생일파티 있는데… 아, 형 한상혁 알아요?” “한상혁?” “응, 형네 과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앤데. 모르려나?” “어…. 알 것 같기도. 총 MT때 얼굴만 잠깐 비추고 와서 잘은 몰라.”
원식은 지방시 클러치에서 아이패드 미니를 꺼내서 갤러리를 열어 휙휙 사진을 넘겼다. 한국에서 제일 큰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회장의 아들답게 고가의 물건만 들고 다닌다. 지갑은 프라다, 폰은 꽃 쓰레기라고 불리는, 한국에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블랙베리 최신형에 신발부터 귀에 건 피어싱까지 걸치고 있는 옷만 해도 천 만원은 넘을 것이다. 나는 신상 프라다 로퍼 하나 사려면 허리띠를 졸라 매야 되는데 이 새끼는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아주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살지. 재환은 속으로 욕을 하며 겉으로는 순진한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식이 내미는 화면을 봤다.
“얜데, 혹시 몰라요?” “어… 기억이 나는 것도 같고…” “내일 얘 생일파티 하거든요. 친한 동생이라 안 갈 수도 없어서 내일은 좀 그런데.” “그럼 됐어, 뭐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너가 그 문제 모를 수도 있는 거고.” “와, 형 진짜. 사람 자존심 자극하는 거 뭐 있다니까? 내가 풀 수 있대두요.” “됐거든, 생일파티나 잘 다녀오세요.” “…형? 혹시 삐진 건 아니죠?” “내가 왜.” “왜긴 왜야, 내가 만나자는 거 까서 그러는 거지.” “아니거든?” “에이, 삐진 거 맞는데 뭐.”
원식은 활짝 웃었다. 한 달 전 즘엔가 클럽에서 처음 보고 나서 번호를 따고 만나자고 조르고 끈질기게 어택 했는데 이제야 결실을 맺는가 싶다. 쭉빵한 여자들만 만나곤 했던 원식이지만 사실 원식은 귀여운 걸 더 좋아했다. 재환을 처음 만난 날도 양 옆에 손바닥보다 작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을 끼고 스테이지에서 놀고 있었다. 여자들은 가슴의 반절이 넘게 푹 파인 상의를 입고 원식의 단단한 어깨와 등, 가슴팍에 뭉클한 살을 비비며 눈웃음을 흘렸다. 원식은 돈이 많고 성격이 좋아 잘 사주는 것으로 클러버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팔뚝에 감기는 야리야리한 허리에도 질리던 중에 스피커 쪽에서 맥주 한 병을 들고 쭈뼛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화려하게 빛나는 클럽 조명에 진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어둠 속으로 묻혔다. 깊은 눈, 조각 같이 높은 콧날, 도톰한 입술. 언뜻 보면 서양인이나 혼혈처럼 보이는 진한 이목구비와는 달리 눈망울은 사슴처럼 순해 보였다. 클럽에 처음 온 것인지 어설프게 박자를 맞춰 몸을 흔들며 불안한 듯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원식은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그 남자에게 클럽에서 질이 나쁘기로 유명한 호모새끼가 다가가자 자기도 모르게 인파를 헤치고 다가갔다. 그리고 남자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얘는 오늘 나랑 놀 거니까 다른 사람 찾아보시죠.” “그쪽은 누구신데요?”
눈치가 없는 건지, 자기를 구해주려고 해도 초를 친다.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얼굴을 봤다가 잠깐 말을 잃었다. 동그랗게 뜬 까맣고 큰 눈망울. 살짝 벌어진 입술. 멀리서 봤을 때는 귀엽다기보단 잘생겼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가까이 보니 느낌이 달랐다. 술기운이 도는지 조금 처져 발갛게 달아오른 눈꼬리가 순진하고 야했다.
“김…원식이요.”
병신처럼 그렇게 이름을 말하고 나서 원식은 재환을 룸으로 데려와 술을 먹이며 번호를 땄다. 그리고그 뒤로 신상을 캐서 같은 학교 행정학과에 다닌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더 들이댔다. 다닌다는 도서관에 찾아가고 저녁 먹자고 불러내고. 김원식이 누군가에게 한 달이나 공을 들이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었다. 손을 잘 타는가 싶으면 싹 몸을 빼고 친해졌다 싶다가도 거리를 두는 게 사람을 안달 나게 한다. 딱딱한 벽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갖고 싶게 만든다. 원식은 이제야 가까워졌나 기뻐하며 재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기름 묻어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을 빼지는 않는다. 작정하고 이러는 거면 꼬리 아홉 개는 달린 구미호인데.
“내일 나랑 상혁이 생일파티 같이 갈래요? 그냥 밥 먹고 노는 건데, 과 후배니까 가도 괜찮잖아.” “내가 걔랑 뭐가 친하다고 거길 가.” “에이, 말이 파티지 되게 크게 하는 건데. 그냥 클럽 빌려서 노는 거에요. 공부만 하면 스트레스 받잖아. 내일 나랑 가서 놀아요. 혼자 안 둘게, 응?”
원식은 고민하는 듯한 재환을 밀어붙였다. 손에 깍지를 끼며 엄지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살살 문지르자 재환의 얼굴이 붉어진다. 귀여워. 얼른 잡아먹고 싶다.
“아, 알았으니까 손 빼!” “지금 알았다고 한 거죠? 무르는 거 없어요.” “알았다니깐… 손 놔줘.”
원식은 신이 나서 손을 놔주기는커녕 손을 더 꽉 잡고 손등에 쪽쪽 뽀뽀했다. 악! 뭐해! 재환이 다른 손으로 원식의 어깨를 퍽퍽 때렸지만 원식은 하하, 할배 같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더 꽉 잡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