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처음 쓴 날짜 보니까 5월이야.... 이대로 냅두다간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아서 조금만 다듬어서 상편으로 올립니다ㅠㅠ
올리면 완결도 내겠지ㅠㅠㅠㅠㅠㅠ
켄 마이 걸 대박! 시트콤 대박!!!! 꽃잎놀이 너무 좋아여 으어어어어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라비! 주인님 와따아~! 라비야!"
쩌렁쩌렁한 성량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재환은 온 집안이 다 울리도록 원식을 불러제꼈다. 원식은 눈을 비비며 방에서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어나왔다. 대강 그러모은 볏짚단처럼 사방으로 붕붕 뜬 백금발의 탈색머리를 손바닥으로 가까스로 누르며 원식은 눈을 비볐다.
"왔어?"
재환은 갑갑한 운동화를 벗다가 아예 양말 채로 벗어버리고 원식에게 달려들었다. 으으, 술냄새. 원식은 허리에 힘을 줘 지탱하며 술냄새를 풀풀 풍기는 재환을 두 팔 가득 안았다. 재환은 징징거리며 훌쩍훌쩍 우는 소리를 냈다.
"씨바알, 왜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지랄이야... 차라리 집에 일찍 보내달라고!"
뿌에엥, 만화같은 효과음이 아주 잘 어울리는 표정이었지만 재환의 욕설은 걸쭉했다. 퉁퉁 부은 입술을 내밀고 주절거리며 원식의 목덜미에 고개를 박아 열이 오른 이마를 비빈다. 자다 일어난 원식의 몸도 따끈했지만 술기운에 달아오른 재환의 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원식은 재환을 토닥이며 방으로 데려갔다.
"그래그래, 많이 힘들었어요? 이제 옷 벗고 자자."
"싫어! 샤워할 거야!"
재환은 취하면 샤워를 하고 싶어했다. 술에 취해 고기냄새, 술냄새, 마늘냄새 같은 온갖 잡내를 묻히고 그냥 자는 것보다야 훨씬 청결한 주사지만 술에 취해 흐느적 거리는 당사자에게는 매우 위험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지난 번에도 사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샤워를 하다가 넘어져서 엉덩이와 허리에 피멍이 들었다. 잘못해서 머리부터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 일인데. 원식은 벌써 욕실 앞에서 훌떡훌떡 옷을 벗어 던지는 재환을 말렸다.
"그러다 지난 번처럼 넘어지려구. 내일 씻자, 응?"
"시이러어! 나 씻으꺼야!"
원식이 머리를 잡으며 한숨을 쉬는 동안 재환은 바닥에 주저앉아 낑낑거리며 스키니핏 블랙진을 벗어냈다. 바나나 껍질을 까듯이 아주 깔끔하게 뒤로 뒤집어 벗은 바지를 저만치로 던지며 재환은 원식에게 두 팔을 벌렸다.
"니가 씻겨주면 되자나. 응? 평소엔 내가 너 씻겨주는데 왜 이런 것도 못해죠!"
아이고, 두야. 그건 머리 감겨주는 거고 너는 지금 샤워시켜 달라는 거잖아. 그게 어떻게 같아? 야근과 회식에 찌들어서 진상을 떠는 재환에게 차마 화도 내지 못하는 건 원식이 다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원식은 다정한 성격에 비해 맺고 끊는 것만큼은 칼같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다. 그런 냉정남 원식이 재환의 징징거림을 받아주는 이유는 딱 하나.
"라비! 주인님 말 들어!"
이재환이 김원식의 주인이니까.
[랍켄] 너는 펫 (上)
책 나오기 몇 달 전부터 한달의 반 이상은 야근이라는 개같은 직장, 출판사. 그 중에서도 건축 잡지 부서에서 일하는 재환은 며칠째 12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고 있다. 너넨 회사원이 아니야, 책을 만드는 에디터! 장인정신을 가지고 일해! 시바알 개같은 편집장 새끼, 지는 2, 3시가 되서 출근을 하고 실컷 딴 짓하다가 5시정도부터야 본격적인 업무를 하는 새끼가 그딴 말을 한다 이거지? 아주 개지랄을 하고 있다. 재환은 옥상에서 밀린 담배를 피우며 미리 출력해 놓은 장례 건축 부분을 훑었다.
"미친, 이딴 오타도 못 찾냐."
담배를 입에 물고 셔츠의 포켓에 끼워놓은 빨간 펜으로 오타 난 부분을 체크했다. 이런 건 맞춤법 검사기에 돌리면 바로 뜨는 건데, 설마 교정 볼 때 검사기 안 돌렸나? 스트레스 받아. 애새끼들이 뭐 말을 들어 처먹질 않냐. 짜증이 나서 열심히 아껴두었던 아이스 볼을 씹기로 한다. 필터를 씹어 안에 있던 작은 공을 깨부셨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입 안 가득 알싸한 박하향이 퍼진다. 이 맛에 말보로 아블 피는 거지. 재환은 담배를 입으로만 물고 곽에 남은 담배를 세어 보았다. 3개 밖에 없네. 재환은 평상시 반 갑에서 한 갑정도를 피우는 노말한 흡연가였으나 야근 때는 거의 하루에 두 갑은 피웠다.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잠을 못자고 신경이 예민해지니 입 안은 깔깔해지고 뭐라도 먹어야되는데 입맛이 없으니까 니코틴이라도 목구멍에 콸콸콸 부어대는 거지. 하지만 사무실은 온통 여자 밭이라서 눈치때문에 담배를 피기 위해 짬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얼마 없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나와서 줄담배를 피워된다. 피는 시간에 비해 피는 밀도가 월등히 높다. 그래서 더 문제인 거고.
"오늘은 남은 것만 더 피고 퇴근해야지. 이러다 폐 썩겠다."
재환은 퇴근해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머지 담배를 모조리 꺼내고 빈 곽을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았다.
그런데 금단 현상일까, 퇴근하는 내내 다리를 덜덜 떨었다. 담배 피우고 싶다. 괜히 입 안쪽 살을 가볍게 씹으며 다른 생각을 해보려 애썼지만 모두 허사다. 재환은 침대에 누워서 얼른 자야지, 얼른 자야 내일 출근해서 또 일하지. 생각하다가 결국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딱 한 대만! 딱 하나만 피고 자자. 너무 참으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도 안 좋아. 트렁크만 입고 자는 재환은 얼른 반바지와 얇은 집업 후드를 꿰어 입고 지갑만 들고 집을 뛰쳐나갔다.
"아, 이 맛이지.."
편의점 앞에는 이미 맥주를 까서 마시는 술에 꼴은 대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재환은 담배 한 보루를 사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딱 한 대만 피고 들어가자. 딱 한 대. 찰칵,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빨자 와, 이게 천국이구나 싶었다. 아 진짜 살겠다. 코와 입으로 담배를 뱉어내며 기분이 좋아 실실 웃는데 골목 안 쪽에서 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씨발, 뭐야!"
깜짝 놀라 담배를 떨어트렸다. 담배를 주워서 흙먼지를 툭툭 털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보니 의류수거함 옆에 놓여진 큰 택배 상자 안에 어떤 남자가 몸을 구기고 자고 있었다. 술 먹고 뻗었나. 술버릇 존나 개같네. 쪼옥쪽, 아주 담배를 맛있게 빨고 있는데 남자 위에 놓여진 종이 한 장 위에 글씨가 써져있는 게 보였다. 그냥 신문지처럼 덮은 줄 알았는데.
"음... 예쁘게 키워주세요? 키워달라니, 무슨 버리고 간 개새끼도 아니고."
재환은 종이를 집어들었다. A4용지에는 커다란 글씨로 '예쁘게 키워주세요'라고 써있고 그 아래로는 작은 글씨로 이름, 성별, 나이, 특기와 취미가 적혀있었다. 재환은 특기란에 적혀있는 '집안일'에 시선이 갔다. 너무 탐이 난다. 재환은 요리는 잼병이었고 머무는 곳마다 쓰레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미친 것 같은 생각이긴 한데..."
재환은 거칠게 머리를 털며 남자를 흘깃 내려보았다. 이상한 사람이면 그냥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여자도 아니니 별로 위험한 일도 없을 것 같고. 숙식 제공만 좀 해주면 집안일 해준다는데... 남는 장사 아닌가? 재환은 고민하다가 남자를 들쳐업었다. 으아, 술냄새. 내일 일어나면 샤워부터 하라고 해야지. 재환은 집으로 들어가 남자를 소파 위에 던져놓고 다시 옷을 벗은 채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기.... 저...요....."
재환은 베개를 끌어안으며 업드려 누웠다. 뭐야, 오랜만에 잘 자는데 귀찮게...?! 재환은 눈을 번쩍 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제 충전을 안하고 자서 폰이 꺼진 상태다. 악! 어떡해! 재환은 침대에서 구르듯 내려와서 가방의 여분의 배터리로 얼른 갈아꼈다. 그리고 마루 위의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시계바늘은 9시 30분을 지나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 시발... 되는 일이 없어..."
재환은 거칠게 머리를 털며 폰이 켜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뒤를 돌아봤다. 침대방에서 나오는 남자는 괜히 찔끔하며 재환을 바라봤다.
"뭐요."
"아, 그게.. 제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혹시 절 아세요?"
재환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뭐라 말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징, 지이잉, 징징징 폰이 꺼져있는 동안 쌓인 메세지와 부재중 전화가 뜨면서 폰이 미친듯이 진동을 했다. 재환은 바로 회사 직속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못 일어났어. 미안, 바로 갈... 뭐? 편집장 출근했어? 미친... 꼭 이럴 때만 일찍 오지. 아, 그래? 존나 선심 쓰네. 어, 기획 기사 내가 어제 거의 다 수정해놨으니까 그거 편집장님 보여드리면 되고 메일로 스페인 기획 체크할 거 보내고 문자 줘. 야, 쉬란다고 쉴 수 있냐. 다음 달 것도 밀렸는데... 응, 고마워. 고생한다, 내일 보자."
재환은 하필 오늘 정시 출근한 편집장을 욕했다. 요새 주말에도 정상출근을 했으니 오늘은 푹 쉬라고 했다고는 하지만 이걸로 나중에 얼마나 갈굴지 모른다. 재환씨는 그때 쉬었으니까 오늘은 늦게까지 할 수 있지? 재환씨는 그때 쉬었으니까~ 이런식으로 엄청 울궈먹겠지. 그럴 걸 생각하면 차라리 출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이미 지각이라 찍혔을테니 그냥 집에서 쉬는 게 그나마 편하겠다 싶다. 재환은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서 혼나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눈치를 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서서 뭐해요. 여기 앉아요."
"아, 네..."
남자에게선 술냄새가 풀풀 났다. 재환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어제 남자를 주워오며 후드 주머니에 쑤셔 넣어놨던 종이를 펴서 내밀었다.
"이거 진심이에요? 키워달라는 거."
"네? 아니, 그게... 그, 잘 데가 필요하긴 한데..."
"진심이면 키워주고."
"네?"
남자의 눈이 커졌다.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서 원래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눈이 두 배는 더 커진 듯하다. 피부도 까맣고 조금 험악한 인상이긴 한데 낯선 집에서 일어나서 조심스레 자는 사람을 깨우고 당황해서 쭈굴거리는 모습이 생긴 거랑 다르게 순한가보네 싶어서 재환은 낯선 남자가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다. 재환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뜯듯이 매만지며 말했다.
"키워준다구요. 집안일만 그쪽이 해주면요. 보시다시피... 내가 집안일엔 영 젬병이라."
"네... 그래보이네요."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탁자는 커피를 마시고 쌓아둔 머그컵과 다 먹은 과자봉지들로 가득했고 지금 앉아있는 소파도 구깃한 옷가지들이 미묘한 냄새를 풍기는 채로 널려있었다. 부엌 씽크대에는 언제 먹었는지 모를 물 때 낀 그릇들이 산더미였고 쓰레기통엔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나온 쓰레기들이 분리수거만 겨우 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썩는 음식물을 방치해두고 버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건 아니지만 재환은 제때제때 청소하고 정리하는 걸 원채 잘 못했다.
"이름이 라비? 가명같은 거에요?"
"아, 네. 본명은 김원식이에요."
"으하! 생긴 거랑 너무 안 어울리잖아!"
재환은 배를 잡고 웃었다. 원식은 민망해서 코를 찡그리며 뺨을 긁적였다. 재환은 신이 나게 깔깔대고 웃은 후에 씻고 나오라고 원식을 욕실로 집어 넣고 문을 닫았다. 원식은 재환이 가져다준 새 속옷과 깨끗한 옷을 입고 마루로 나왔다. 사실 원식은 술냄새 말고도 냄새가 좀 났다. 한동안 연습실과 클럽 사무실에서 노숙을 했기 때문이다. 몸은 찜질방에서 씻었지만 옷에선 어쩔 수 없는 쩐내가 났다. 그래서 옷을 몇 번 사입기도 했는데 잘 곳도 없는 그의 지갑사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환이 가져다 준 옷에서는 섬유 유연제를 아주 한 통을 다 쏟아 부었는지 다우니 향이 코를 찌를 듯 강렬했다. 집안일 진짜 못하나봐. 원식은 옷자락에 코를 묻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어때, 같이 살래요?"
"네, 뭐.. 저야 좋죠."
"좋아, 라비야. 그럼 내가 예쁘게 키워줄게."
재환은 젖은 원식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때. 바로 이때 원식은 재환에게 반했다. 미래에 관한 걱정, 빛나는 꿈을 갉아먹는 힘든 길거리 생활. 불안한 길 위에서 한 걸음을 내딛기도 벅찬 그때 재환은 아무런 질문 없이 원식을 받아주었다. 어린 놈이 왜 잘데도 없이 그러고 다녀? 부모님 없어? 쫓겨났어? 아무런 애정이나 책임감 없이 내뱉는 비난의 말이나 한 마디의 사족도 없이. 키워줄게. 재환에겐 별 거 아닌 한 마디, 생각 없이 내지른 행동이었겠지만 원식은 기뻤다. 그래서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졌다.
"어어, 왜 울어. 주인님이 생겨서 기뻐?"
"아니, 뭐... 네에...."
"하하, 라비 완전 울보네."
재환은 원식을 끌어다가 품에 안고 다독였다. 이 어린 남자애가 길에서 무슨 고생을 했을까.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데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울어라, 울고 나서 뜨뜻한 밥 한 끼 먹으러 가자. 어깨가 눈물로 젖는 것을 느끼며 재환은 이따 원식에게 집안 청소나 시켜야지, 야무지게 부려먹을 생각부터 했다.
"아, 주인! 내가 커피 마신 건 제깍제깍 싱크대에 놓으라고 했지! 컵에 때 낀다고!"
그 결과 원식은 아주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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