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운은 집에 있을 때 속옷 외에 옷을 잘 걸치지 않는다. 그건 일하는 시간이 밤낮을 가리지 않아 하루 종일 각을 세워 다린 정장을 입어야 하는 그의 직업적 특성의 반작용이나 마찬가지였다. 택운의 옷장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셔츠가 빼곡했고 시커먼 정장이 계절별로 몇 벌씩 있다. 입다가 못 쓰게 되어 버린 정장은 그 수를 세기조차 어렵다. 처음엔 아무도 입지 않는 구겨진 정장 한 벌을 주워 입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다양한 고가 브랜드의 정장들을 쟁여두고 입는다. 명품 정장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택운의 상사는 택운을 아름답게 꾸며서 옆에 두는 것을 좋아했다. 너는 사람을 부리는 자리가 어울리는 놈이다. 날 도와 내 옆에서 날 받쳐다오. 그게 너도 높이 올라가는 길이다. 택운은 야망이랄 것까진 없었으나 기왕 이 길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으니 보다 높은 자리가 목숨 보전에 좋다는 것쯤은 알았다. 이유도 없이 그저 저 새끼는 눈빛이 기분이 나쁘다, 생긴 게 께름칙하다, 별 같지도 않은 이유로 무자비하게 맞은 일이 수도 없었기에 택운은 자신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우응…”
뒤척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재환을 내려다 본다. 어깨에는 이빨자국이 붉게 남았다. 멍들 줄 알았는데 하루면 없어지겠네.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기분에 손 끝으로 어깨를 살살 문지르니 부드러운 피부가 부어서 살짝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택운은 얇은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재환의 맨 등과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보통의 남자애답게 무릎이나 팔에는 운동과 알바로 인한 작은 흉터들이 몇 있지만 허벅지 위부터는 흉터 없이 깨끗하다. 칼빵, 담배빵, 문신.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흰 몸. 택운은 어제 자신의 밑에서 아프다고 울던 재환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닳고 닳은 인종들이라 택운이 거칠게 해도 내색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택운은 태생이 화가 많았다. 택운에게 섹스는 쌓인 화를 해소하는 과정에 가까웠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택운의 애인들은 더 화를 돋우게 될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택운은 섹스를 할 때 아프다는 건 다 엄살이나 교태인 줄로만 알았다. 아프다고 해놓고 곧 앙앙거리면서 달려들어 허리를 흔들기 십상이니 아무리 처음이라도 그렇게 아프겠나 싶어 젤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대강 풀어준 후에 무작정 처넣었다. 재환은 자지러지며 울었다. 요령 없이 잘라낼 듯 꽉 조이는 것부터 아무리 안을 휘저어 기분 좋게 해주려 해도 아프다고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달랐다. 결국 택운은 딱딱한 자지를 빼고 재환을 품에 안고 달랬다. 심지어 침대 시트에는 피까지 묻었다. 재환은 어떻게 자기가 우는데도 밀어붙이냐며 주먹으로 택운의 어깨를 퍽퍽 때려가며 울었다. 아저씨 거짓말했어, 내가 무섭다고 하면 그만 한다면서요! 택운은 안절부절 못하며 울음을 멈추기 위해 계속 입을 맞춰 키스했다. 삐진 재환을 달래기 위해 그 새벽에 옷을 주워 입고 편의점에 가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초코 과자들을 잔뜩 사와야 했다. 훌쩍훌쩍 울음을 그치며 숟가락을 물고 그제야 택운의 눈치를 보는 재환이 얄밉지만 귀여웠다. 고작 섹스가 뭐라고? 싶기도 했지만 다음 시도에 눈을 꼭 감고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픔을 참는 모습은 조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재환아, 일어나봐. 아침 먹자.” “응… 아라써…”
재환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웅얼웅얼 대답했다. 깨려고 하는 짓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햇빛을 피해 얼굴을 묻어버린다. 말이 짧다? 택운은 피식 웃으며 침대를 내려왔다. 새 속옷을 꺼내 입고 침실을 나와 부엌으로 걸어갔다. 새벽 동안 차갑게 식은 바닥이 시원하다. 택운은 냉장고를 열어 갖은 재료들을 꺼냈다. 바닥에서 구를 때부터 워낙 싸구려 짱깨만 먹었더니 외식에는 진절머리가 나서 택운은 조직 내에서 자리를 잡아 현장에 덜 나가게 된 때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란 후라이도 태우던 그였으나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솜씨가 좋다.
우선 된장을 꺼내고 멸치와 말린 새우, 황태 등을 면포에 넣고 육수를 끓인다. 택운은 도마 위에 무, 애호박, 양파, 감자, 파, 팽이버섯을 꺼내 놓고 칼집에서 칼을 꺼내 통통,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도록 경쾌하게 썰었다. 택운은 칼을 잘 썼다. 사람의 살점을 베어내는 데 칼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어디 있겠냐마는 마치 샤프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손가락 위에서 어지럽게 돌려 묘기를 하는 남자애마냥 칼을 아주 쉽게 다뤘다. 길쭉한 몸과 비례해 팔이 늘씬하게 긴데다가 어깨가 떡 벌어진 탓에 손에 칼을 들면 리치가 남들보다 몇 배는 길어지는 느낌이다. 택운의 상사는 택운이 칼을 써서 현장을 정리하면 짝짝 박수까지 처가며 좋아했다. 하지만 택운 본인은 요리를 할 때 쓰는 칼놀림을 더 좋아한다. 옷이나 얼굴에 튀는 피도 없고 시끄러운 소리도 안 나니까. 게다가 채소를 썰면 요리가 된다. 물론 사람을 써는 것은 돈이 되지만 직접 몸으로 들어가 맛을 느끼게 해주고 피와 살이 되는 요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택운은 보기 좋게 썬 채소들을 해물을 건져낸 육수에 퐁당퐁당 빠트리고 된장을 풀었다. 그리고 소셜 커머스에서 사둔 노르웨이 순살 고등어를 꺼내 허브 솔트와 후추로 밑간을 하고 생강을 꿀에 재워둔 생강채와 마늘 소스를 발라 굽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는 소리와 치이익 후라이팬에 고등어가 구워지는 분주한 소리가 부엌을 채운다. 재환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냄새에 눈을 반짝 떴다.
“…아저씨? 요리해요?”
추워. 아침의 싸늘한 공기에 이불을 둥둥 두르고 나오자 인덕션 앞에서 요리를 하는 택운의 등판이 보인다.
“일어났어?” “뭐에요, 그 차림은.”
재환은 눈을 비비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택운은 까만 빤스 한 장만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귀찮아서.”
태연히 말하는 모습이 우스워서 재환은 키득거리면서 어그적거리는 걸음으로 택운의 뒤로 가 넓은 등을 끌어안았다.
“아저씨 짱이다… 아침부터 된장찌개에 생선을 구워주다니. 꼭 엄마 같아.” “…그런 말 처음 들어.”
택운은 날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 그에게 부모란 술 먹고 주먹질을 해대는, 그러면서 돈을 받으러 온 조폭들한테는 한없이 약한 쓰레기 같은 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환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 아프게 했으니까 이따 아저씨가 밥 먹여줘요, 응?”
재환은 단단한 택운의 등에 뺨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택운의 넓은 등판에 꽉 차게 새겨진 검은 용이 자신을 노려보는 듯 했지만 이미 택운의 노트북은 아주 작은 텍스트 파일 하나까지 깔끔하게 카피 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