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켄 두 조각

2021. 4. 28. 01:23 from text

1.
<B>내가 만약 부자가 되면</B>

"되면요?"
"일단 막 만원짜리 팩을 엄청 사서"
"사서?"
"껍데기에 10분에서 15분만 붙이라고 하는 걸 다 지켜서 붙일 거야."
"ㅋㅋㅋㅋㅋ"
"정말 딱 10분만 붙이고 있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지마! 그리고 아직 축축하다고 목이나 다리같은 데에 붙이고 있지도 않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부자가 되서 한다는 게 고작 팩을 권장사항대로 쓰겠다는 거라니."
"고작이 아니야! 그건 마음의 여유와 직결 된다고!"
"그건 지금도 내가 하게 해줄게. 팩 100장 사줄게 팍팍 써."
"1000원짜리 말고 막 만원짜리 팩으로 그럴 거거든? 내가 부자되면?"

홍빈은 배를 잡고 침대를 구르며 웃었다. 재환은 씩씩대면서도 손가락으로 토닥토닥 얼굴에 남은 팩 잔여물을 흡수시켰다. 

"지금도 피부 좋아. 팩 안해도 돼."
"...시끄러워. 너랑 다니면 비교될까봐 무섭거든?"
"나랑 다니면 비교되는 게 피부만은 아닐걸?"
"이게 진쨔!"

홍빈은 힘껏 날아오는 다리를 잡았다. 어휴 다리 두꺼운 것 좀 봐. 아주 종아리가 튼실하다 튼실해. 홍빈이 놀리자 재환은 얼굴이 빨개져서 다리를 버둥댔다. 홍빈은 힘을 줘서 발목을 잡아당겼다. 침대헤드에 상체를 기대고 있던 재환의 자세가 무너졌다. 홍빈은 재빨리 재환의 위로 올라탔다. 

"괜찮아. 나이 차이 모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피부 좀 처진다고 구박 안 해."
"...그게 할 소리냐, 진짜. 넌 내 맘을 너무 몰라."

인상을 찡그리자 눈썹이 팔자로 누우며 억울한 표정이 된다. 귀여워. 누가 이 남자를 서른으로 보겠어. 홍빈은 힘껏 웃으며 재환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아, 맛 이상해. 팩하지 마."
"야! 먹지 마!"

바둥거리는 재환의 팔을 잡아 눌러 입맞추며 홍빈은 저 멀리서 불빛이 깜빡이는 재환의 핸드폰을 슬쩍 밀어 침대 밖으로 떨어트렸다. 내가 부자가 되면 너 회사 그만두게 하고 집 안에만 있게 할 거야. 어디도 가지 말고 나하고만 있어.




2.
<B>(약 공포)거울 속의 나</B>


가끔가다 일상적인 행동들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서 거울 보기라던가 계단을 올라가기라던가. 혼자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고있을 때면 가끔 내 뒤의 텅 빈 공간이 정말 텅 비었을까 의심스럽게 된다.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면 내 발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나 의식하게 된다. 그럴 때가 있다. 이 공간에 내가 아닌 존재가 있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그래서 이렇게 날 화장실 같이 와달라고 깨운 거야?"
"그러게 누가 일찍 자래...?"

자기 전에 세수를 하려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들어가기가 무서워 먼저 자던 홍빈이를 깨웠다. 홍빈이는 내게 핀잔을 주면서 욕조 테두리에 걸터앉아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볐다. 나는 헤어밴드로 앞 머리를 시원하게 올려 까고 어푸어푸 세수를 했다. 손바닥에 폼클렌징을 짜고 비벼서 부들부들한 거품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코 옆도 열심히 문지르고 광대 아래쪽에 여드름이 가끔 나는 편이라 신경 써서 닦고 턱 아래까지 꼼꼼히 닦았다. 그러다 실눈을 떠서 홍빈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이상하게 오싹한 날이다.

"!?"

거울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져서 파드득 고개를 돌렸다. 아, 날파리구나. 불빛때문에 밖에서 들어온 것인지, 하수구에서 올라온 것인지 작은 날파리가 날아다니다 거울에 붙었다. 엄지손으로 꾹 눌러서 죽이고 물을 틀었다. 

어푸어푸 물로 거품을 헹궈내는데 계속 머리 한 구석에서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캬악-! 
"아!"

창문 밖에서 들린 고양이 소리에 심장이 철렁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남은 거품을 헹구려 세면대로 얼굴을 돌리는데 소름이 쫙 끼쳤다. 

"빈아, 빈아!"
"왜. 세수 마저 해."
"됐어, 나가자. 빨리!"
"왜 그래? 마저 해."
"됐다니까!"

홍빈이의 팔을 잡아서 화장실을 나가며 나는 필사적으로 거울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거울은 앞에 있는 사람을 비춰주는 도구.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계속 나의 움직임과 한 박자씩 어긋났다. 세면대로 머리를 숙이려는 그 때, 이상한 기분에 거울을 보니 거울 속의 내가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빨의 갯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게 보였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나는 집에서 오자마자 렌즈를 빼고 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눈에서 15센치만 떨어져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저 얼굴은 대체 누구의 얼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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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올린 조각 두개입니당!
트위터는 즉흥적인 느낌이라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ㅋㅋㅋ

Posted by 바비켄 :